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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생 성호씨는 클래식기타리스입니다.  그리고 다소 긴 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

드니 성호 얀센스가 그의 지금 이름입니다. 그에게는 2년전 결혼한 띠 동갑 아내가 있고 그의 부모님은 벨기에에 계십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한국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고 합니다.  드니 성호 얀센스가 태어난 70년대에는 훨씬 많은 아이들이 입양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아이를 키울수없는 상황이 있었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컸었습니다.




벨기에의 시골 마을에서도 2km가량 떨어진 숲속의 집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은 서른 넘도록 아이들 갖지 못하다가 드니를 만났다고 합니다.   체육교사인 아버지와 꽃집을 운영하던 어머니는 그렇게 동양인 드니 성호와 운명적 인연을 시작했습니다.

 


무뚝뚝하지만 묵직한 사랑을 주시던 아버지와 꽃 알레르기가 있어 꽃장사를 접은 어머니의 섬세한 사랑도 드니 성호가 겪었던 청소년기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나 봅니다.  그의 평생 꼬리표가 되는 동양인 입양아는 항상 근원적 물음을 던져주었습니다.

 


결국 12년전 이끌리듯 한국을 찾은 드니 성호는 결국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중이던 아내를 만나 불꽃같은 한달간의 연애끝에 결국 결혼을 하게됩니다. 2년전 일입니다.  

띠동갑이라는 나이차와 입양아 그리고 음악가(어찌보면 가난할 수 있는)라는 조건이 받아들이기 힘들수 있었지만 부모님도 흔쾌히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그는 아내로 인해 맺어진 가족과 벨기에에 계신 부모님이 있습니다.

한국의 가족인 장인 장모에게는 더할수 없이 살가운 사위가 된것은 말할것도 없습니다.

44살의 나이에도 엉덩이춤이며 트로트가락쯤은 뽑을 수 있는 멋진 사위가 된거지요.



아내 민희씨를 만난 순간을 지금도 잊지못하는 드니 성호는 한국의 가족에 한없이 고마울 뿐입니다.   홀로 한국에 와서 외로움과 불안함을 함께 맞보던 그에게 사랑과 편견없은 애정을 준 아내와 장인, 장모님은 또 다른 가족이 된 셈입니다.



벨기에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또 다다른 그리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결혼후 아내와 함께 부모님을 찾아뵙습니다.   아내 민희씨는 부모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을 먹으며 드니 성호 그의 신랑에 대한 어릴 적 앨범을 가족과 보게됩니다.

동양인 입양아로써 느꼈을 어릴적의 좌절을 극복하게 해준 부모님께 새삼 고마울 뿐입니다.



벨기에 부모님 덕분에 민희씨는 드니 성호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매달린 기타가 결국은 드니 성호를 유럽의 라이징 스타로 선정되 뉴욕 카네기홀 연주까지 하게 만들어줬습니다.

그렇게 30년을 기타와 함께 했지요. 지금은 클래식기타와 전자음악의 조합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또 틈틈이 그간 한국에서 계속 실패했었던 친부모찾기와 함께 인생 2막 희망의 연주도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가 연주하는 2막은 신나고 경쾌한 음악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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